중국조선족 민속 널뛰기의 변천과정에 관한 고찰
중국연변대학교 체육학과 : 김 영웅
중국에서의 소수민족전통체육은 중화민족의 유구한 문화유산으로써 사회주의 체육사업의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인정되고 있다.수 천년의 수렵, 농경, 전쟁과 문화오락 등활동을 통해 생성 발전해온 민족전통체육은 역사의 흐름에서 흥성과 쇠퇴를 반복하면서오늘날에까지 전해져왔다.중국은 다민족 국가로서 민속체육내용이 풍요로울 뿐만 아니라 형식이 다양하고, 짙은 민족지역적 특색을 가지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에는 “민족자치지방의 자치기관은 자주적으로 본 지방의 교육,과학, 문화, 위생, 체육사업을 관리하며, 민족의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정리하며, 민족의문화를 발전, 번영시켜야 한다.” 라고 명백히 규정되었다.중화민족의 일원인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能歌善舞하는 활달한 민족으로써 다채로운 민속놀이들로 농경의 여가를 즐겨왔다.더욱이 중국공산당이 새 중국을 창립한(1949) 뒤 사회의 전반 분야에서 공산당의 민족정책이 전면적으로 관철됨에 따라 연변의 민속체육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민족전통체육이란 특정한 민족이 보편적으로 행해지고, 즐기는 놀이 또는 운동으로써 그 민족의 특유한 문화를 대표적으로 그릴 수 있는 신체운동 문화이다.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하면서부터 중국국가체육운동위원회(국가체육총국)과 국가민족사무위원회에서민족전통체육의 발전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제창하며, 영도를 강화하여, 개혁, 제고하는기초위에서 온당한 발전을 이룩하여 한다.” 는 방침을 내세우고, 민족전통체육종목에대하여 발굴, 정리, 제고, 발전사업을 다그치었다.
조선민족의 전통체육인 널뛰기는 이러한 환경에서 전국소수민족 전통체육대회를 계기로 대외로는 자기 민족의 전통체육을 홍보하고 방법의 널뛰기 방법과 기자재의 정교화에 커다란 성과를 이룩하였고,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날로 쇠퇴해지고 있는 우리민족의문화유산을 현대스포츠와의 접목을 시도 한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그러나 소수민족 전통체육대회를 통하여 민속널뛰기가 “보다 빨리, 보다 높이, 보다 강하게”를 좌우명으로 하는 근대스포츠의 원리를 좌우명으로 하면서 “경쟁원리를”에 의존하여 “과학”을구사하면서 민속문화의 근원인 대중성을 이탈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여 가고 있지 않으냐?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최근에는 “도핑”문제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듯이 육체적인 가능성 개발이 드디어 한계에 임박함으로 이른바 신체에 대한 “亂開發”로 변용 되어 가고 있다.이러한 현실에서 민속전통체육의 스포츠화로 인하여 민족문화의 전통성과 민족(민속)문화의 보편성을 전승, 확보하고 있는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중국조선족의 전통 민속놀이인 널뛰기의 전승과 발전역사를 돌이켜 봄과 동시에 중국소수민족 전통체육대회의 경연경기종목으로 채택된 경위 및 민속체육운동의 경화화로 인한 전통체육의 보존과 발전의 타당성여부를 살펴보려고 한다.
중국조선족의 민속전통체육의 형성과 발전은 민속체육의 주체인 중국조선족의 지역분포특징 및 이주생활과 밀착된 민족전통체육이다.반도에서 이주한 중국조선족은 이주와 정착과정에서 원적(原籍)의 일치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로 집단거주지역을 형성하면서 민족적 공동체 사회를 형성하였다.그러기 때문에 우리민족의 지방적 특색이 농후한세시풍속이나 민속전통놀이의 전승과정에서 특정지역의 고전적인 민속전통놀이가 확실한 형태로 전승 또는 재창출될 가능성이 매우 미약하였다.중국조선족 분포지역의 원적구성통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반도 8도강산의 모든 이민이 혼거하고 있는 현실로써 특정지역의 특정놀이가 정통성을 가지고 전승되지 못하고, 변형된 형태로 현실성에 맞게 전승,발전되었다.더욱이 중국조선족 문화창출의 중심지역인 연변지역의 지리적 특성으로 함경남,북도의 이민이 가장 많았고, 또한 지정학적으로 조선반도의 북부지역과 인접하여 있음으로 하여 중국 조선족들의 민속 문화는 조선반도 북부지방의 문화가 많이 전래되어 왔다.뿐만 아니라 광복이후 중국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지역주민들의 자유로운 이동이 엄격히 통제됨에 따라 거주지역의 변화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표 1.1926년 중국조선족이민 원적통계표
중국조선민족의 민속놀이 형태와 유형이 매우 빈약하고 단일적인 원인은 다양한 형태의 소수집단이 혼거하는 형태로 정착한 것이 가장 주요한 원인이라고 하겠으나, 중국조선족의 민족문화를 계승하고 발전하려는 동기와 사회적환경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이다.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조선족의 민족전통체육경기, 행사축제의 민속체육경기 등에 내포되고 있는 경기종목으로는 씨름, 그네, 널뛰기가 주된 내용이다.
놀이란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활동이나 “일”에 해당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신체적,정신적 활동을 가리킨다.인류의 탄생 이래 모든 민족, 모든 개별 인간은 누구나 놀이를즐겨왔고, 우리 선조 또한 생활 속에서 독특한 놀이 문화를 계승,발전 시켜왔다.
민속은 한 문화권 내에서 다수가 향유하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문화이다.여기에는사상.종교.철학.예술.구전물.풍속.놀이.축제 등의 정신문화와 의식주를 포함한 각종 문화재.생산 양식과 생산도구.경제체계 등의 물질문화도 포함된다.
민속놀이는 인간의 여러 행위와 놀이 중에서 민간에서 발생하여 민간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 놀이를 말한다.이러한 민속놀이는 일정한 때와 특정한 장소라는 제약성을 지니며,특정 민속놀이는 세시와는 관계없이 계절의 운행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성을 갖는다.
우리 민족 여성들의 민속전용 놀이인 널뛰기는 그네와 더불어 명절에 성행되는 대표적인 민속놀이이다.널뛰기는 지랫대 원리를 이용한 우리민족의 디딜방아에서 유래되어우리민족 여성들의 놀이로 음력 정초를 비롯해 단오, 한가위 등 큰 명절에 행해졌다.널뛰기의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전설에 의하면 높은 담장속에 갇힌 여인들이 남편을 보기 위하여 한 여인이 다른 여인을 꾀하여 널뛰기를 하였다는 말이 있다.
널뛰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부터 전승되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고려시기에는 여성들도 기마나 격구를 하였다는 기록에 미루어 볼때 그 가능성은 충분하다.조선조의 후기에는 유교적 사상으로 여성들의 나들이마저 금기되었으나 “처녀시절에 널을 뛰지 않으면 시집가서 아기를 낳지 못한다 하여 힘차게 널뛰기를 시켜서 시집을 보냈다”고 하는 것처럼 방안에서만 갇혀있던 부녀자들이 마음껏 뛰고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놀이였다.또한 전설에 의하며 높은 담장 저편에 갇힌 옥중의남편을 보려고 그 아내가 다른 죄인의 아내를 꾀어 둘이 널뛰기를 하면서 그리운 남편의얼굴을 엿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옛날 집 담장 안에서만 지내던 여인들이 이 놀이를 창안하여 높이 올랐을 때 담장 밖의 세상 풍경과 남자의 모습을 훔쳐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설이나 추석, 또는 5월 단오 등 명절에 주로 여성들이 즐기던 민속 널뛰기는 길이2-2.4m, 너비 20cm, 두께 5-7cm 가량의 널반자를 집단이나 가마니로 고이고 두 사람이양쪽에 올라서서 널이 평형을 이루도록 조절한 후 한사람이 뛰어 올랐다가 내리면서 발을구르면 그 힘의 반동으로 상대방이 공중을 뛰어 오르는 놀이로 그 높이는 2-3m에 달하기도 했으며, 널뛰기를 하다가 발이 널빤지에서 떨어지는 사람은 다음사람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규칙도 있었다.
일본의 오끼나와현(沖縄県) 류큐(琉球)에 전승되는 판무(板舞)가 널뛰기와 유사한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널뛰기 놀이는 도판희(跳板戱) 또는 판무(板舞)라고도 해서 고려시대의 여자들의 놀이로 퍼져서 해외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1792년 중국청나라사신인 서보광 (徐葆光)이 일본의 오끼나와견문을 기록한 <중산전신록(中山傳信彔)>에 나오는 판무(板舞)가 곧바로 한반도와의 문화적 교류를 통하여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1] .
이에 대하여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誌)와 최남선(崔南善)의 연구에 의하면 고려말부터 조선중기까지 류큐국과 빈번한 교류에 의한 것으로 추축되지만 그 원류에대하여서는 확실치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널판 양단에 한 사람씩 올라서서 처음엔 줄을 잡고 천천히 뛰기 시작한다.그리고 널판 가운데는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올라앉아 널판을 널받침 위에 고정시키는 작용을 하도록 한다.두 사람이 마주서서 번갈아 뛰게 되면 뛰었다가 내리튕김 작용으로 하여 몸은점점 공중으로 높이 솟게 된다.
특히 이 널뛰기놀이는 그 방법이 간단하지만 유쾌하고 활달하고 씩씩한 여성들의 놀이인 만큼 격렬한 운동이 아닐 수 없다.그러므로 널뛰기는 오랜 시간을 계속할 수 없는놀이이기에 여러 사람이 서로 짝을 지어 교대해가며 쉬었다 뛰고 뛰었다 쉬면서 노는 것이 또한 널뛰기의 재미인 것이다.
널뛰기 동작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기본적인 다리동작을 들면 다음과 같다.
가.곧추뛰기:뛰어올랐을 때 두 다리를 곧추펴고 뜀
나.굽혀뛰기:뛰어올랐을 때 두 무릎을 굽혀서 뜀
다.가위발뛰기:뛰어올랐을 때 두 다리를 앞뒤로 벌려 뜀
라.좌우벌려뛰기:뛰어올랐을 때 두 다리를 좌우로 벌려 뜀
마.한 다리 붙여뛰기:뛰어올랐을 때 한 다리를 다른 한 다리쪽에 붙여(앞, 옆) 비껴 뜀
바.데사리:뛰어올라 몸을 한 바퀴 돈다.
사.중등꺾기:뛰어올랐을 때 두 다리를 앞으로 내뻗치면서 상체를 앞으로 한다.
아.공중회전뛰기:뛰어올라 공중회전함.
중국조선족 널뛰기 경기에는 두 도약자가 한 조가 되어 뛰는 형식으로 되어있고, 경기내용으로는 ‘줄 뽑기’와 ‘표현’이 있다.표연경기는 규정종목과 자유종목 두가지로 나뉘운다.
제한된 시간(2분 혹은 3분)내에 두 도약자의 발목에 맨 실이 얼마나 풀려 올라갔는가를 측정하여 성적의 우수정도를 결정한다.즉, 두 도약자가 널을 뛰어 풀어 올린 발목의실의 길이를 재어 우수정도를 결정한다.
표현에는 규정종목과 자유종목이 있다.규정종목은 몇 가지 널뛰기동작을 규정하여순서적으로 제한된 시간 내에 서로 연결하여 동작한다.자유종목은 ‘자유표현’이라고도한다.손에 여러 가지 가벼운 기구(부채, 화환, 테, 끈 등)를 들고 동작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다리의 기본동작에다가 아름답고 다채로운 手具의 동작을 기교 있고 영민하게 한다.일반적으로 표현에서는 자유종목을 한다.
널뛰기는 중국조선족들의 이주초기부터 널리 보급되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놀이이다.어디까지나 자연적이고 활동적이며 공중에서 약간 긴축된 아름다운 몸매 그리고행동감과 환희로 가득 차 잇는 아주 경쾌한 놀이로서의 특색을 가진다.게다가 손에 수구를 가진 것으로 한층 더 흥미를 자아내게 하고 신체 각 부위에 운동효과를 준다.특히 널뛰기표현에서 수구를 가진 것으로 하여 널뛰기 동작은 폭이 더욱 커지며 널뛰기놀이가 더욱 미적인 절주를 갖게 한다.그리고 수구의 여러 가지 동작은 자기표현을 위주로 하는 개성이 매우 풍부한 창조성을 보여주어 마치 신선한 생명의 도약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여러 가지 수구는 그 형태와 크기, 무게 등의 차이로 하여 기능상에서의 차이점도 있게 되지만 그러나 수구는 결코 그 어떤 장식품이 아니기 때문에 수구의 고유한 특성을 충분히 살려 수구에 의한 아름다운 동작을 남김 없이 발휘하게 됨으로서 그 의미를 가진다.
중국조선민족의 전통 민속놀이인 널뛰기는 여성들이 즐기는 그네와 남성들의 씨름과더불어 중국에 이주하여서 줄곧 전승해오던 민속놀이다.예로부터 단오는 5월 초닷새이며 양(陽)이 가장 왕성한 날이어서 최대의 명절로 삼았다.다른 명칭으로 수리, 천중절, 중오절, 단양, 수릿날이라고도 하였고, 수리는 고.상.신(高。上.神)을 뜻하는 옛말로 신의 날,최고의 날이라는 뜻이다.이 날은 수리떡, 취떡 등을 해먹고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며 여자들은 널을 뛰고 그네를 타며 남자들은 씨름을 하였다.
이러한 한민족의 전통적인 습속은 일제 통치시기에도 연변지역에서는 단오, 또는 추석엔 민속놀이를 경기의 형태로 진행하여 왔다.1930년 5월 14일에 중국조선족의 여성단체인 龍井槿友會의 발기로 6월2일(음역 단오 날)에 용정 대성중학교 운동장에서 중국조선족 여성들의 최초의 민속체육경기가 열리었다.특히 중국의 동북지역에 이주한 조선족 이주민들은 널뛰기를 정월에 뛸수있는 기후적인 환경조건이 주어있지 못함으로 흔히추석이나 단오와 같은 명절에 이러한 놀이들을 즐기었다.또한 이러한 민속전통놀이와 축제들을 통하여 망국의 설음을 달래고, 다민족이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는 새로운 환경에서민족의 정체성과 동질성을 확인하며, 지역적 친목을 돈독히 함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광복이후 1948년 연변 제1회 운동대회를 계기로 조선민족의 전통 민속체육이 경기종목으로 채택되었다.이러한 민속체육 종목경기는 8.15광복기념일을 택하여 행하여지다가 1952년 9월 3일 연변조선족 자치주가 성립됨에 따라 해마다 “9.3” 자치주성립 기념일을 중국조선민족의 최대 축제로 삼고, 여러 가지 운동경기와 민속체육경기를 진행하여왔다.
1952년 중국공산당의 연변지역에 대한 민족자치권한 부여로 하여, 연변조선민족은정치, 경제, 문화의 주체가 되었다.중국의 헌법에는 “민족자치지역의 자치정부는 자주적으로 자치지역의 교육, 과학, 문화, 위생, 체육사업을 관리하고, 자기민족의 문화유산들을보호, 정리하여 민족문화를 발전 번영시켜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중국공산당의 민족문화 보호정책으로 연변 지역의 민족문화와 민속체육은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맞이하였다.어려운 생산, 생활 여건에서도 자기민족의 전통문화와 풍속은 여전히 지켜 내려왔다.
조선민족의 전통놀이인 씨름, 그네, 널뛰기 등은 연변조선족자치주 뿐만 아니라 중국의 조선족 산거(散居)지역에서도 단오와 추석을 맞으면 흔히 행해지는 놀이들이다.흑룡강조선족 운동대회, 요녕성조선족 운동대회, 북경시, 할빈, 심양시 등 대도시와 더불어 향촌의 부락에서도 민속전통체육종목들이 활발히 진행되었다.이러한 민속운동대회에는 주변의 타민족들의 흥미를 자아내기도 하였다.연변지역의 민족전통체육종목경기는 씨름의경우는 한족(漢族)선수들이 참가한 사례도 있고, 또한 우승을 한 기록도 있지만 단지 그네와 널뛰기에는 한족(漢族) 여성들이 참가하고 입상한 기록들이 없다.그 원인은 연변의 민속전통체육경기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여성선수는 한복을 입고 출전하는 것 때문이 아니었는가 추측된다.
지난날 널뛰기는 조선족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즐기는 민속놀이로써 광범한대중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이주초기의 조선족 여성들의 널뛰기는 조선반도의 전통적인 널뛰기의 형식과 방법을 그대로 전승하여 왔었고, 중국이라고 하는 특정한 사회 환경에서 민속놀이로부터 오늘의 중국조선족 널뛰기의 특이한 형식과 내용들로 구성되었다.
표2, 널뛰기 방범의 비교
중국조선족 널뛰기의 방법과 형식의 변화를 유도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전국적인 소수민족 전통체육경연이 주된 원인이 아니라고 할수 없을 것이다.1953년 10월8일 중국천진시에서 “전국 민족형식 체육표현 대회”를 성대한 규모로 개최함으로 중국소수민족체육연구에 대한 발굴의 장을 열었다.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의 책임부서인 국가 민족사무위원회에서는 국가 체육운동위원회와 공동으로 중국소수민족의 민속전통체육 종목경기를 통한 민족단합과 민족체육문화재발굴과 정리사업을 시작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중국이 건국초기에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정치적인 동란(문화혁명)으로 하여 중단되었다.1981년 9월21일부터 28일까지 국가체육운동위원회와 소수민족사무위원회에서는 연합으로 전국의 각성시 자치구의 소수민족사무 관련자들의 모임을 가지여, 중국 소수민족정통체육의 방침과 정책으로 제정함과 동시에 1982년 9월에 제2회 전국소수민족 전통체육대회를 개최함으로 중국소수민족 전통체육에 대한 발굴과 정리사업의 본격화가 시작되었다.
국가민족사무위원회와 체육위원회는 매4년 1회의 전국소수민족 전통체육대회를 개최하기로 하였고 소수민족전통체육을 경기화함에 있어서, 경기규칙의 규범화, 공정성 작업을 착수하면서 소수민족 전통체육종목들의 타민족간의 교류와 보급을 시도하였다.이러한 정부차원의 민족체육에 대한 통합적인 경기화 방안으로 하여 연변조선족의 전통체육종목인 그네와 널뛰기는 국가유관부분의 위탁으로 정규적이고도 통일된 경기규칙창출에 몰입되게 되었다.
그림 1.중화인민공화국 소수민족전통체육운동회 운동종목 변천과정 통계
널뛰기가 전국소수민족 전통체육경기의 경연종목으로 여러차례 입상함으로하여 지방의 소수민족 관련부서와 체육위원회에서는 정식경기종목으로 인정된 그네와 널뛰기선수양성을 전문화 체계화 작업에 착수하였다.1987년 연변체육운동위원회와 주민정국의후원으로 용정현 조양천1중에 그네와 널뛰기선수를 양성하는 체육학교를 편성하여 전문적인 훈련에 몰입핟도록 하였다.매4년 1회씩 거듭되는 전국소수민족 전통체육대회에서길림성으로 대표하여 출전하게되는 조양천 제1중학교 널뛰기팀은 보다 화려하고 새로운널뛰기 방법과 기술을 선보이기 위하여 나어린 선수들을 조기(早期)양성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수구와 어려운 공중회전에 도전하여 역차 전국소수민족 전통체육대회에서 널뛰기는줄곧 우수경연종목으로 입상되었다.
연변조선족 그네 널뛰기선수양성과 전국소수민족 전통체육대회를 대비하여 길림성정부부서에서는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그네, 널뛰기 전용체육관을 만들고, 정규적인 전문훈련에 들어갔다.4년후의 전국소수민족전통체육대회를 위하여 합숙을 하며, 매일 그네를 타고 널뛰기를 야하는 여중학생들이 나타났다.제6회 전국소수민족 전통체육운동대회에 참가한 연변팀은 금메달 하나에 선수에게 상금 만원(인민폐), 코치에게 5천원이라는포상제를 실시하였고, 다른 성에서는 더욱 큰 포상을 걸었다.소수민족체육의 경기화와상품화는 경쟁이 갈수록 치열하고, 전문화되고 있다.지난 국경50돌을 맞는 1999년 9월말 북경에서 열린 제6차 전국소수민족 전통체육운동대회에서 연변조선족 여학생으로 구성된 길림성 널뛰기팀은 예외없이 우수경연팀으로 입상하여 연변조선민족에게 기쁨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길림성민족사무위원회와 성 체육운동위원회의 관계자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조선족 널뛰기가 전국 소수민족전통체육대회에서의 경연종목목채택은 널뛰기의 스포츠화, 써커스화함에 있어서 기자재와 훈련방법의 과학성 전문성에는 크게 접근한 반면에 전통적인 민족문화의 요소들이 점점 빈약해지고 있지 않느냐 하는 문제제기를 해 볼필요가 있다.조선민족 널뛰기는 여성들의 전용놀이로써 명절날에 해하여졌고, 아름다운민족복장인 치마저고리는 그네타는 여인들의 모습을 더욱 황홀하게 단장하여 주었으며,그네 널뛰기터에서의 아낙네들의 지화자 소리와 씨름터의 소방울 소리는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조선민족의 고유한 놀이(체육)문화의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었다.그러나80년대후반 부터 이러한 연변 또는 중국조선족 사회의 민속운동의 명절분위기는 점점 조선족사회에서 멀어지고 있고 요짐은 전혀 찾아볼수없는 현실이다.
중국 국가 민족사무위원회와 체육운동위원회(현재 국가체육총국)의 민족전통체육의연구와 발굴의 주된 목적은 첫째는 민속체육의 보존과 보급이고, 둘째는 각 민족의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사료된다.그러나 연변조선족의 전통적인민속체육인 그네의 경향은 점차적으로 탈 대중화한 전문화의 방향으로 급속히 발전하며,민족문화와 지역적인 요소들을 소외하고 있는 현황이다.
문화의 계승과 발전에 있어서 단지 문화적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민족이 존속되어있는 구체적인 역사과정과 사회 환경이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때문에 중국조선민족의 전통놀이인 널뛰기의 전승발전과정에서 중국조선족이라는 역사적인 현실과주변 환경의 영향 및 주체자의 자율적인 필요성과 시대적인 요청을 부인 할 수 없는 것이다.널뛰기라는 우리민족의 전통놀이가 중국사회현실에서의 전승과 발전과정에 다음과같은 사실들이 밝혀졌다.
1.민속놀이의 체계화 규범화 스포츠화를 실현하였다.
2.사회여건의 변화로 민속놀이의 본연의 모습과 보편성이 흔들림을 받고 있다.
3.민속전통체육의 보존과 발전에 있어서 민족자치정부차원의 관리에 역점을 두어야한다.
4.민속체육의 발굴, 정리와 규범화(과학화)의 관계를 재조명 할 필요를 보여준다.
민속체육은 체육문화의 복합적인 구성요소의 일부분임으로 발굴과 정리에 있어서 특정놀이의 성격을 보존함이 더욱 중요하다.즉 특정 민족의 체육문화의 향토성, 민족성, 예술성, 제의성을 배제하고 과학적이고, 규범화된 서양근대스포츠의 틀을 기준으로 한다면,그 자체는 스포츠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말살과 민속스포츠의 이변을 초래할 우려가 높다.때문에 민족전통체육의 발굴과 본존에 있어서 스포츠 문화적 관점과 민속학적관점에 입각하여, 사회전반에서 민속운동이 대중화로 발전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여야한다.4년에 1회씩 열리는 전국소수민족대회에서 전문화한 선수 몇 명으로 금메달 획득하기보다 전반 조선민족이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고, 다방면으로 전면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여야 한다.
● 중국조선족문화사계 11권 체육사, 북경대학 조선문화 연구소 1998.4 민족출판사
● 민족전통체육교과과정, 白普湘, 劉少英공저, 2000.3 중남공업대학출판사
● 우리나라의 민속놀이, 沈雨晟, 1996.10, 동문선출판사
● 민족문제개론, 吳仕民,1999.7 사천인민출판사
● 스포츠문화의 <현재>를 탐색 稻壇 正浩 편저 2002.4 業文社
● 우리민족의 놀이문화, 조완묵 지음, 1996.1 정신세계사
● 전통의 날조와 창조 홉스보옴, 랑거편.최석영 역 1995.5 성경문화사
● 한국민속과 오늘의 문화 임재해 1995.8 지식산업사
● 중국조선족 민족전통체육의 형성과 발전과정, 김영웅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2005, 2,
作者简介:金英雄 1958年5月28日出生于吉林省延吉市,朝鲜族。现任延边大学体育学院党委书记,教授,硕士生导师,曾留学日本获得硕士学位,留学韩国获得博士学位。主要研究方向朝鲜族及其地区体育文化研究。
电子信箱:jin_7505@hotmail.com
电 话:0433-273-3577(办)
作者单位:吉林省 延吉市 延边大学体育学院
邮 编:13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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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板横跤两头起落双双,瞥见飞仙驾羽反如研燕,身轻借势低昂,春风橛袖争高下。一边乍踏鹊翻技,一边已打鸟飞枯,那霸正月彩虹齐跨,警鸿不着秋千架掀,动六尺轻搓纵然平也。归客猶詫,羡他细趾会腾空凌波,可学应无价之,可知其妍妙之壮矣。
역문: 널판하나를 가로놓고, 양쪽에서 쌍쌍이 올라갔다 떨어지니 얼른 보면 신선이 나는 듯 하고 , 민첩하기가제비같구나.가벼운 몸으로 형세를 빌어 낮았다 높았다 하니 봄바람이 소매에 부딪치면서 다투어 올라가고 내려오는도다.한쪽에서 잠깐 밟으니 까치가 가지를 치듯 또 한쪽에서 벌써 디디니 까마귀가 마른나무에서 나는 듯 하구나.나파고을 정월에 채색무지개가 일제히 뻗치니 놀란 기러기도 따를수 없고 그네를 뛰는 듯 비록 평지이지만 6척에 가벼운 떼목에 탄 듯 하도다.지나가는 행인도 오히려 머물러 서서, 저 가는 다리가 공중에 오르고 물결 차는 듯하는 것을 부러워하니 가히 배우자면 응당 값이 없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