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级韩国语》(上、下)是中国朝鲜(韩国)语教育的摇篮——北京大学外国语学院朝鲜(韩国)语言文化系继《韩国语》(1-4)之后奉献给广大读者的又一倾心之作,是六名青年教师精诚合作的结果,是教材编写团队集体智慧的结晶。
从开始策划编写这套高级教材之初,我们一直在思考这样几个问题,那就是在对已经掌握了基本的语法、词汇,能够用韩国语实现基本交际功能的大学韩国语专业学生进行高级阶段的教学时,我们的教学重点究竟是什么,我们应该为其提供怎样的知识,培养其何种能力。我们在深入分析中国大学生的学习特点、社会对其实际需求的基础上,结合自身的教学经验,最终确定了教材的基本编写思路,那就是在加强语言知识、文化知识传授的同时,更重视加强学生综合能力的培养,启发学生进行有深度的思考,以期达到拓展其人文视野,提高其人文素养之目的。为体现这一编写理念,在编写过程中,我们一直努力将近年来国内外在应用语言学、朝鲜(韩国)语教育学研究方面的先进成果及我们在教学过程中积累下来的行之有效的经验与方法融入到教材之中。全套书共分为上、下两册,每册设有5个单元15课,涵盖了日常生活、语言文学、民族精神、宗教思想、文化艺术、社会制度等诸多领域,精选最能反映韩国文化的代表性文章,力求角度多元,体裁多样,同时结合“文化介绍”及“拓展阅读”等版块,为广大读者搭建一个全面深入了解韩国文化与社会的平台。在练习题设计方面,注重进行听说读写译五种功能的多维度训练,注重加强对学生理解与表达能力的培养,在对语法与词汇进行充分练习的同时,通过设计各种促进学生能力发展的训练内容,启发学生进行独立而深入的思考,以期达到语言活动与认知活动的完美结合。
本书每一课的基本结构如下:
本套教材采用的编写方法是,在集体讨论确定各单元主题及各课选材后,首先解决所有选文的版权问题,并向部分作者直接约稿。之后在确定教材单元构成的基础上,由各位老师执笔编写各课内容,最后所有编者打破分工界限,一起对教材书稿进行反复修改、完善。教材编写的具体分工情况如下,王丹全面主持编写工作并编写上册6、10、11、12课及下册7、15课;南燕协助主持编写工作并编写上册5、7、14、15课及下册2、12课;琴知雅协助主持编写工作、编写教材听力文本、韩文词句把关;林成姬编写上册1、3、8课及下册4、5、9课;文丽华编写上册4、9、13课及下册3、8、11课;李婷婷编写上册2课及下册1、6、10、13、14课。把六个人的思想完美地融合到一套教材中并非易事,既要求我们把每个人的专业优势发挥得淋漓尽致,又需要我们为全书的统一而顾全大局。在并肩战斗的近千个日夜里,在同甘共苦的艰苦过程中,我们不仅收获了知识与经验,更收获了彼此的信任与友谊。
在这套教材即将付梓的今天,谨向关心与支持我们的所有同仁表达我们诚挚的谢意!首先,我们要把发自内心的感谢献给韩国釜山大学的金承龙教授。为了能让学生学习地道的韩国语,了解韩国文化的精髓,我们决定选取韩国原版文章作为课文文本,这就意味着我们首先要取得所有选文的版权许可。当我们真正开始联系相关出版社或者作者时,我们才意识到事情的难度远远超出我们的想象。当多次联络石沉大海、试图通过官方途径解决的努力得不到回应之时,金承龙教授主动请缨帮助我们解决这一横亘在我们面前的难题。金教授牺牲了自己的宝贵时间,与几十个出版社、几十位作者一一联系,历时一年多的时间,终于为我们从出版社或原文作者处取得了全部引用文章的版权使用许可!不仅如此,他还慷慨解囊,从韩国为我们购置大量参考图书,并在主题选取方面也给了我们诸多宝贵意见与建议。金教授的无私帮助给了我们战胜困难的勇气,而我们能做的,唯有用心编写这套教材来回报他的默默付出与真挚情谊!我们还要感谢欣然接受我们的赐稿请求,百忙之中为我们的教材亲自撰文的梨花女子大学李培镕教授、韩国国立首尔大学宋丙洛教授、权在一教授、闵贤植教授、庆北大学白斗铉教授、郑羽洛教授、釜山大学金承龙教授,他们的不吝赐文为更多渴求知识的中国学生打开一扇充满魅力的智慧之门。感谢欣然同意我们使用珍贵作品作为教材课文的所有相关出版社与原文作者。我们还要真诚地感谢抽出宝贵时间为我们认真校对书稿的我们的好姐妹——北京联合大学权震红老师、北京第二外国语学院崔英兰老师、北京语言大学丁一老师,她们的热情帮助我们将永远铭记在心。感谢帮助我们对书稿做最后校对、整理的爱徒刘畅、张磊、申明钰、曹梦玥,是他们用他们的真诚给了我们最灿烂最幸福的回报,让我们更加深刻体会到了教师这一工作的意义!感谢允许我们无偿使用《岁寒图》这一韩国文化瑰宝作为教材封面的《岁寒图》所有者孙昌根老人,感谢在我们与老人联系过程中予以积极协助的韩国国立中央博物馆有关人士,感谢为教材听力部分献上完美配音的闵庆万先生、琴知雅老师,感谢为我们的教材绘制精美插图的我们系的才女刘雨晨同学,感谢为本书的编写与出版提供经费支持的韩国国际交流财团及北京大学国家外语非通用语种本科人才培养基地。最后,我们还要感谢此书的编辑,我们的学生兼系友刘虹的积极配合与鼎力相助!太多感激,无以言表,我们只能藏记于心;太多激励,怎敢辜负,我们唯有砥砺前行!
尽管这是一部用心之作,但由于我们的能力与经验的不足,在实际编写中难免仍会出现各种纰漏,我们真诚盼望广大读者与国内外同行不吝赐教,批评指正!
编者
2017.3
01 잃어버린 문화재, 되찾은 문화재
02 간송 전형필
03 신라 천년의 중심, 속살을 드러낸 반월성에 올라
01
★ 문화재의 중요성에 대해 알아봅시다.
★ 문화재 환수의 당면성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1. 다음은 한국 문화재에 대한 대화입니다. 잘 듣고 말해 봅시다.
2. 다음 내용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다음 사진을 보고 떠오르는 국가 이름을 빈칸에 써 봅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
문화재에도 국적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요즘 많은 국가들이 자국의 문화재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 봅시다.
북관대첩비 는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의병장 정문부(鄭文孚)가 함경도, 곧 ‘북관(北關)’에 쳐들어온 왜군을 크게 격퇴한 것을 기리기 위해세운 기념비이다. 전쟁 초기에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와 함경도까지 진주했던 왜군은 정문부가 이끄는 7천여 의병의 반격에 밀려 물러가게 되었다.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왜군의 침략을 꿋꿋하게 물리쳐 조선의 동북부를지킨 의병들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이 북관대첩비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그러나 조선의 지배권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전쟁이 한창이던1905년, 북관대첩비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뽑혀 일본으로 반출된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치욕적인 역사가 담겨 있는 이 비석을 그냥 놓아 둘 수없었던 것이다. 전리품 으로서 야스쿠니 신사에 보내진 북관대첩비는 ‘비문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니 믿지 말라’는 안내문과 함께 신사 한 구석에 방치된다.
1. ‘북관대첩비’의 사진을 찾아보고 그 문화재적 가치에 대해 말해봅시다.
2. 러일전쟁에서왜 조선의 비석이 ‘전리품’이 되었을까요?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아봅시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뒤이은 남북 분단과 전쟁 등 역사의 소용돌이를거치면서 비석의 존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1978년 에 재일 동포 출신의 학자에 의해 비석이 다시 발견되고, 이때부터북관대첩비를 환수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민간 차원과 정부 차원에서 동시에 이루어져 우리나라 정부가 일본 정부에 공식적으로 반환을 요청하였다.
3. 비석이 70여년 만에 다시발견된 것에대해 어떻게생각합니까?
그러나 일본 정부나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비석 반환을 거부하였다. 당시 일본 정부는 ‘북관대첩비의 본래 소재지가 북한’이라는 이유를 들어 우리 정부의 반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야스쿠니 신사에서도 ‘남한과 북한이 공동으로 합의하면 반환하겠다’는 입장 을 보였다. 하지만 분단 상황에 놓여 있는 남북이 문화재 반환에 대한 합의를 이루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또한 북한은 일본과 공식적으로 외교 관계를 맺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문화재 반환에 대한 협상 자체를 할 수도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북관대첩비는 계속 방치된 채 훼손되고 있었다.그러나 한반도에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북관대첩비의 반환 협상도 물꼬가 트이게 되었다. 남한, 북한, 일본의 민간단체가 만나 북관대첩비를 북한으로 돌려보내기로 합의를 한 데 이어, 남북한 정부도 공동으로 일본에 문화재 반환을 요청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렇게 민간단체와 남북한정부가 서로 협력한 결과, 북관대첩비는 2005년 10월 20일 우리나라로돌아오게 된다. 비석은 훼손된 부분을 복원하는 작업을 거친 다음 국립박물관에서 일반에 공개되었다. 그리고 전시용 복제품을 만들어 경복궁에 비치하고, 진품은 2006년 3월 1일 에 북한으로 인도하였다. 북한은 이 비석을 ‘국보 유적 제193호’로 등록하고 함경북도 김책시, 비석이 원래 있던 자리에 세워 보존하고 있다.
4. 일본의 입장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까?
5. 한일 관계에있어서 ‘2005년’과 ‘3월 1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알아봅시다.
의병장, 쳐들어오다, 왜군, 격퇴하다, 기리다, 파죽지세, 진주하다,반격, 물러가다, 수적, 열세, 꿋꿋하다, 물리치다, 반출되다, 치욕적,비석, 전리품, 야스쿠니 신사, 비문, 방치되다, 일제 강점기, 뒤잇다,분단, 소용돌이, 재일 동포, 환수하다, 반환, 소재지
혼란과 격변의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수많은 문화 유물들이 파괴되거나 불법으로 약탈당했다. 현재 약 7만 6천여 점의 문화재가 해외 여러나라에 흩어져 있으며, 대다수는 일본, 미국, 영국 등의 강대국 들이 소유하고 있다. 잃어버린 문화재를 되돌려 받기 위해 민간이나 정부 차원에서 꾸준한 노력이 있어 왔지만, 그 실적은 아직 미미하다.
6. 이 나라들이왜 한국의 유실된 문화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을까요?
다른 나라에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기 힘든 것은 현재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는 나라가 되돌려 주기를 꺼리는 데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그 나라들은 대부분 불법으로 약탈해 간 사실을 숨기거나, 아니면 합법적인 거 래 를 통해 얻었다고 주장하며 문화재를 환수할 구실을 주지 않으려 한다.또한 문화재를 되찾으려는 나라들의 관리 능력을 문제 삼으며 자신들이 그 문화재를 보호하는 것이 인류 문화를 위해서 더 좋다는 논리를 펴기도한다.
7. 다른 나라의문화재를 얻는 데 있어서‘불법’과 ‘합법’의 경계가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훼손되다, 화해, 무르익다, 물꼬, 트이다, 돌려보내다, 복원하다, 일반,복제품, 비치하다, 진품, 인도하다, 격변, 유물, 불법, 약탈(당하다),점, 흩어지다, 강대국, 실적, 미미하다, 꺼리다, 구실
하지만 이런 어려움 때문에 문화재를 되찾으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거나포기해서는 안 된다. 빼앗긴 문화재는 아무리 오랜 시일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되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찾을 수 있다.첫째, 문화재는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연구 자료 가 되기 때문이다. 과거에 강대국들이 문화재 약탈에 열을 올렸던 데에는그것이 속한 사회와 문화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는 목적도 있었다. 문화재를 약탈한 나라는 그에 대한 연구를 통해 다른 민족과 사회에 관한 귀중한 지식을 얻는 반면, 문화재를 빼앗긴 나라에서는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자료가 없어 쩔쩔매고 있다. 이런 현실이 우리 세대를 넘어 후대까지 지속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8. 문화재의 실제적 용도는‘연구 자료’이외에 또 무엇이 있는지말해 봅시다.
둘째, 문화재는 그저 박물관에나 보관되어야 할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자기 문화의 자긍심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개성을 가진 개인이기도 하지만 문화적인 전통 안에 있는 사회적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 의 자긍심과 정체성은 문화적 전통이나 문화재를 통해서도 형성된다. 이런역할을 하는 문화재를 외국에 두고서도 그것에 대한 소유권조차 강력하게주장할 수 없는 것은 민족적 자존심을 훼손당하는 일이다. 역사와 문화를배울 때마다 ‘이 작품은 매우 훌륭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현재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하지요.’라는 설명을 대를 이어 되풀이하게 할 수는 없다.
9. 글쓴이의 이주장에 동의하는지 말해봅시다.
잃어버린 문화재를 되찾으려는 노력은 우리나라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집트, 에티오피아, 그리스 등 많은 나라들 이 자기네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들을 상대로 문화재 환수를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약탈당한 문화재를 환수하는 것은 한 국가의 위상을 세계 속에 다시 세우는 일일 뿐 아니라 어그러진 자국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바로잡는 일이기도 하다. 문화재를 되찾아 오는 것은 위대한 문화를 물려받은 후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또한 되찾아 온 문화재를 원천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야 할 후대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10. 이 나라들은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는지생각해 봅시다.
시일, 열, 귀중하다, 쩔쩔매다, 자긍심, 정체성, 되풀이하다, 위상,어그러지다, 물려받다, 원천
명 사: 의병장, 왜군, 파죽지세, 반격, 열세, 비석, 전리품, 야스쿠니 신사, 비문, 일제 강점기, 분단, 소용돌이, 재일 동포, 반환, 소재지, 화해, 물꼬, 일반, 복제품, 진품,격변, 유물, 불법, 점, 강대국, 실적, 구실, 시일, 열, 자긍심, 정체성, 위상, 원천
명사·관형사: 수적, 치욕적
동 사: 쳐들어오다, 격퇴하다, 기리다, 진주하다, 물러가다, 물리치다, 반출되다, 방치되다, 뒤잇다, 환수하다, 훼손되다, 무르익다, 트이다, 돌려보내다, 복원하다, 비치하다, 인도하다, 약탈(당하다), 흩어지다, 꺼리다, 쩔쩔매다, 되풀이하다, 어그러지다, 물려받다
형용사: 꿋꿋하다, 미미하다, 귀중하다
1. 반대말이 아닌 것을 골라 봅시다.
(1) ① 환수하다-반환하다 ② 격퇴하다-물리치다
③ 물러가다-쳐들어오다 ④ 트이다-막히다
(2) ① 자긍심-자괴감 ② 복제품-진품
③ 소용돌이-물꼬 ④ 분단-통일
2. [보기]에서 알맞은 것을 골라 빈칸에 써 봅시다.
보기: 위상, 구실, 실적, 수적, 원천, 정체성, 일반, 보통
(1) 계속 몰려오는 적군들을 ( )로/으로 당하기는 어려웠다.
(2) 청소년기는 자신의 ( )를/을 확립하는 시기이다.
(3) 그는 보호라는 ( ) 아래 우리를 자기 마음대로 하려 했다.
(4) 그의 마지막 작품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 )에 공개됐다.
3. 밑줄 친 부분과 바꾸어 쓸 수 있는 것을 [보기]에서 골라 봅시다.
보기: 어그러지다, 약탈당하다, 방치하다, 기리다,
비치하다, 뒤잇다, 되풀이하다
(1) 큰아들이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았다.( )
(2) 가난한 농민들의 얼마 안 되는 재물조차도 적군에게 빼앗겼다.( )
(3) 이사를 하면서 장롱의 문짝이 틀어져서 잘 닫히지 않는다.( )
(4) 그들은 고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
(5) 아프지 않다고 그대로 내버려 두면 나중에 큰 병이 될 수 있다.( )
4. [보기]에서 알맞은 것을 골라 적절한 형식으로 문장을 완성해 봅시다.
보기: 꿋꿋하다, 미미하다, 쩔쩔매다, 어그러지다,
방치하다, 비치하다, 물러가다, 반출되다
(1)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____________ 목소리였다.
(2) 가정에도 상비약을 항상 ____________ 것이 좋다.
(3) 그들은 시련과 고통을 ____________ 이겨 나갔다.
(4) 일본에 ___________ 불상은 기업인들의 노력으로 국내로 들어오게 됐다.
앞과 뒤의 행위가 잇따라 발생함을 나타낸다.
▶ 민간단체들이 북관대첩비를 돌려보내기로 합의를 한 데 이어, 양측 정부도 공동으로일본에 문화재 반환을 요청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 회사 매출은 작년에 두 배 증가한 데 이어 올해에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 앞서 우리 회사가 신제품을 출시한 데 이어 어제 경쟁사에서도 신제품을 내놓았다.
▶ 몇 년 전부터 친구들이 차례대로 결혼을 한 데 이어 슬하에 아이를 두고 있다.
얽매여 거리끼지 않다는 뜻을 나타낸다.
▶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왜군의 침략을 꿋꿋하게 물리쳐 조선의 동북부를 지킨 의병들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이 북관대첩비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
▶ 쏟아지는 폭우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강행했다.
▶ 몸살이 나 밤새 뜬눈으로 밤을 새웠음에도 불구하고 정상 출근했다.
▶ 그렇게 말렸는데도 불구하고 말을 듣지 않고 일을 저질렀다.
행위를 나타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피동’의 뜻을 더하고 동사를 만드는 접미사이다.
▶ 혼란과 격변의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수많은 문화 유물들이 파괴되거나 불법으로 약탈당했다.
▶ 수없이 거절당하다 보니 실패가 두렵지 않았다.
▶ 가장 친한 친구에게 이용당한 걸 생각하면 아직도 속상하다.
▶ 여중생 2명이 학교 앞에서 납치당할 뻔한 사실이 알려져 주목을 받고 있다.
1. ‘-(으)ㄴ 데 이어’를 사용하여 적절한 형식으로 문장을 완성해 봅시다.
(1) 월초부터 (대화의 물꼬가 트이다/ 협상이 타결되다)
월초부터 대화의 물꼬가 트인 데 이어 2주 만에 협상이 타결됐다.
(2) 오전에 (반격을 시작하다/ 적군을 격퇴하다)
오전에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 훼손된 비석은 (복원 작업을 거치다/ 공개적으로 전시되다)
훼손된 비석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4) 미술관에서 그림의 (복제품을 만들다/ 진품을 반환하다)
미술관에서 그림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에/-(으)ㄴ/는데도 불구하고’를 사용하여 문장을 만들어 봅시다.
(1) 야스쿠니 신사, 주변국, 반대(하다), 거세다, 참배하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실적, 열, 추격(하다), 뒤늦다, 올리다, 미미하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 화해, 협상, 분위기, 끝내, 무르익다, 어그러지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4) 열세, 작전, 수적, 꿋꿋하다, 준비하다, 펼치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 주어진 단어를 피동형으로 바꾸어 문장을 완성해 봅시다.
(1) 그들에게 주도권이 (잡다) _______ 뒤로 우리는 계속 밀리기만 했다.
(2) 중학교 때 매일 (무시하다) _______ 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3) 사망자 유품이 가족들에게 (인도하다) _______ 3개월이나 걸렸다.
(4) 경찰의 꼼꼼한 수사로 사건의 전모가 (밝히다) _______.
(5) 유명 정치인이 가정 폭력 혐의로 (체포하다) _______ 충격을 주고 있다.
(6) 수입금 전액이 문화 사업에 (사용하다) _______.
1. ‘북관대첩비’의 유출과 환수 과정에 대해 본문의 내용을 참조하여 정리해 봅시다.
2. 북관대첩비의 환수 과정에서 관련국 정부 이외에 민간 행위자도 중요한 역할을 한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본문에서 언급된 다양한 행위자들의 역할을 정리해 봅시다.
3. 문화재 환수에 관련한 당사국들은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다른 ‘입장’을 보이곤 합니다.글쓴이가 주장하는 환수의 필요성과 현재 소유국들이 흔히 내세우는 반환 거부의논리에 대해 본문의 내용을 참조하여 각각 정리해 봅시다.
1. 문화재 환수와 국력 혹은 국제 정치와의 관계에 대해 본문의 내용을 참조하여 생각해 봅시다.
2. 문화재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글쓴이가 해당 문화재를 만든 ‘민족’이나 ‘국가’라고 주장하는 반면 현재 소유국의 주장에서 시사되는 바와 같이 ‘합법적인 거래를 통해 얻은 자’나 ‘인류 공동’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정리해 봅시다.
▶ 나의 생각: □ (문화재를 만든) 민족이나 국가, □ 합법적 소유자, □ 인류 공동
▶ 그 이유: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 ‘잃어버린 문화재는 우리 민족을 위해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라는 글쓴이의 주장에대해 찬성측과 반대측으로 나누어 토론해 보고 양측의 주요 논리를 다음에 정리해봅시다.
문화재 반환 문제는 문화재가 제작된 원소유국을 떠나 불법적인 과정을 거쳐서 타 국가의 공공 기관 및개인이 소장하게 된 문화재에 대해 원소유국이 반환을 주장할 경우에 제기된다. 불법적으로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를 환수하기 위해서 유엔 산하 전문 기구인 UNESCO를 중심으로 관련 협약이 제정되어 왔다.하지만 협약이 강제력이 없는 국제법이며, 문화재 반환 분쟁에서 가장 많이 원용되는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은 1970년 이후 거래된 문화재에만 적용된다는 한계가있다. 결국 문화재 반환은 주로 이해 당사국 정부 간의 협상, 기증, 구입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 문화재도 역사상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해외로 많이 유출됐다. 현재까지 파악된 해외 소재 한국문화재는 총 167,968점(2016년 9월 1일 기준)이고, 약 20여 개국에 퍼져 있다. 그 국가별 소장 현황은 다음 표와 같다.
표1: <국가별 한국 문화재 소장 현황>
(출처: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 참조)
표2: <시대별 한국 문화재 환수 현황>
(출처: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 참조)
한국은 해외 유출 문화재의 환수를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고 위의 도표에서 보여 준 바와 같이 현재까지 환수된 문화재 수는 총 9,970점이다(2016년 9월 1일 기준). 국가별로는 일본, 미국, 스페인 등의순이며, 방법별로는 기증, 정부간 협상, 구입 등의 순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1965년의 ‘한일문화재협정’1,432점, 1991년의 ‘영친왕비 복식 양도협정’ 295점, 2011년의 ‘프랑스가 보유하고 있던 외규장각 도서반환’ 297점과 ‘일본 궁내청 소재 조선 왕조 도서 반환’ 1,205점이 있다.
한국 문화재청은 해외 유출 문화재에 대한 조사 연구 및 환수를 위해 2012년 7월에 산하 특수 법인으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의 중요한 임무는 해외 유수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물론, 민간에흩어져 있는 한국문화재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합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는 현지에서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돕는 각종 지원 사업을 수행하고, 불법 혹은 부당하게 국외로 유출된 것이 분명하게 확인되면 이를 되찾기 위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우리 품에 돌아온 문화재』, 눌와, 2014.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8), 창비, 2011, 2012, 2015.
이영호, 『잃어버린 우리 문화재를 찾아서』, 거인, 2014.
이재호, 『천년 고도를 걷는 즐거움』, 한겨레, 2005.
혜 문,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금강초롱,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