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 신라의 고도 경주와 신라의 역사에 대해 알아봅시다.
★ 유적지 보호 의식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1. 다음은 경주 지역의 문화재에 대한 대화입니다. 잘 듣고 말해 봅시다.
2. 다음 내용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다음 사진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면 말해 봅시다.
중국의 고도 중에서 어디를 가 봤습니까? 그 느낌에 대해 말해 봅시다.
반월성 가는 길은 첨성대, 계림 지나 북쪽에서 동쪽 안압지를 지나가는길이 일반적인데 이 코스는 제일 느낌이 떨어지는 C급이다. A급 코스는 동쪽 길을 올라 남서쪽 성(城) 위 오솔길 따라 북쪽 입구로 나가는 길이다. 신라를 잘 모르겠거든 이 코스대로만 천천히 걸어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단 밤에 걸으면 경주의 온 유적지에 천박하게 불을 밝혀 놓아 느낌이감퇴되고 특히 동쪽에는 막대기불이 알록달록해서 꼭 도깨비불 같다 .
1. 글쓴이는 무엇을 도깨비불에 비유했습니까? 왜그랬을까요?
경사가 가파른 반월성 오르는 길은 낙엽이 수북히 쌓여 올라가기가 미끄러웠다. 성 위에는 앙상하게 드러난 돌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묵묵히 수용하고 있었고, 하얀 속살을 드러낸 겨울나무가 더욱 나를 숙연하게 했다.
성에 다다르니 워낙 높아 박물관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아직도 성을끼고 도는 남천은 하얀 얼음이 군데군데 보이고 맑은 물도 소리 없이 모래를 적시고 있었다. 대숲이 보이고 솔밭이 보인다. 3시가 되었는지 매 시간마다 울리는 성덕대왕 신종 소리가 온 반월성과 허공을 울리고 있었다. 대숲 옆 높은 참나무 가지에 비둘기 두 마리가 다정하게 앉아 있다. 세한(歲寒) 연후에 송죽(松竹)의 푸르름을 알듯이 앙상한 가지만 흔들거리는 나무들과 대조적으로 솔잎은 푸르고 댓잎에서는 윤기가 흐른다.
2. 성덕대왕 신종의 유래에대해 알아봅시다.
솔밭과 대밭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면 궁녀들의 치맛자락소리가 사각사각 나는 것 같은데, 그 옆에는 족구장, 화장실, 각종 운동기구, 활쏘기 체험장, 말타기까지······ 아! 한심하다. 천년 궁성이 무슨 체육공원 같다.
3. 글쓴이는 이단락에서 어떠한 심정을토로하고 있습니까?
반월성에서도 엄청난 유물들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후세들을 위하여 그대로 묻어 두었다. 성 아래 맑은 물가에서는 아줌마 셋과 아저씨 하나 가 소줏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성 따라 이리저리 휘어진 흙길은 정겹고, 남쪽 끝과 서쪽이 시작하는 높은 성 위에서는 커다란 고목나무 두 그루와 예쁜 소나무가 나를 반겨준다. 이 반월성(半月城)을 흔히 반달 모양이라 생각하지만 우리들 마음속의 반달은 언제나 상형문자 月과 같이 초승달 모양이다. 이 반월성도 그렇게 생겼다. 그래서 고려 시대 대표적인 문인 이인로 (李仁老,1152~1220)도 「반월성」 이라는 시에서 “외로운 성이 약간 굽어반달처럼 형상 짓고”로 시작했는가 보다. 신라 최초의 궁궐은 서남산 기슭(현 창림사)에 있었다 하나 흔적도 없고, 탈해 가 왕이 되자 이곳에 궁성을정했는데 5대 파사왕 22년(101년) 2월에 성을 쌓아 월성이라 이름 짓고거처하였다. 기록대로라면 탈해가 토함산에서 지형을 살펴보다 호공이 살고 있던 이곳이 탐나서 몰래 숫돌과 쇠붙이 숯을 묻어 놓고 자기 조상이살던 곳이라 하면서 빼앗는다. 이 내막을 알게 된 2대 남해왕은 탈해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고 맏사위로 삼는다.
4. 이 구절을 쓴글쓴이의 생각에 대해 토론해 봅시다.
5. 이인로의 시「반월성」을찾아 읽고 그뜻을 음미해봅시다.
6. 신라의 탈해왕에 대해 알아봅시다.
떨어지다, 어렴풋이, 천박하다, 감퇴되다, 알록달록하다, 도깨비불, 경사,가파르다, 수북히, 수용하다, 숙연하다, 끼다, 적시다, 대숲, 솔밭, 세한,흔들거리다, 댓잎, 대밭, 어우러지다, 치맛자락, 사각사각, 족구장,
활쏘기, 휘어지다, 흙길
나는 아무도 없는 성 위에 앉아서 아름다운 서쪽 하늘과 남산 도당산,남천 요석궁의 최부자집, 경주 향교, 계림 등을 바라보았다. 역사의 흔적이무엇인지 흐르는 물은 끊임없이 말해 주는데 나에게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여기서 바라보는 석양은 기가 막히는데 아직도 서산에 해가 많이 남았고 나도 갈 길이 멀다 .
7. 글쓴이는 왜‘갈 길이 멀다.’고 말했을까요?
반월성 머리에 날은 저물려 하니
먼 나그네의 심정이 더욱 처량하네
푸른 양산 기슭에는 노을이 늙었는데
······
평생에 만사가 뜻과 같지 않으니 무슨 소용 있으랴
술단지 앞에서 거나하게 취해 볼까?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위의 시를 보니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여기쯤이 아닐까? 북쪽 입구에는 간간이 가족 동반 여행객들이 들어오고 있다. 조금 더 가면 1738년(영조 14년)에 만든 석빙고가 있는데 잘 만들어 놓았다. 예전에는 반월성을 다 돌고 나면 짚신 두 짝 이 다 닳아 없어진다 했지만 내 신발은 얼마나 닳았는지 모르겠다.
8. 글쓴이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목나무, 초승달, 거처하다, 숫돌, 쇠붙이, 내막, 맏사위, 석양, 거나하다,짚신, 짝
을유년(乙酉年) 닭띠 해에 닭띠 나그네가 닭숲으로 가니 묘한 기분이다. 이 계림은 원래 시림(始林)인데 흰 닭이 울고 있었다고 계림(鷄林) 이 되었고, 찬란히 빛나는 금궤에서 사내아이가 누워 있다 나왔다 하여 금궤는성 김씨(金氏)가 되고 사내아이 이름은 알지(閼智)가 된다. 경주 김씨 시조가 되는 알지는 신라어[鄕言]로 어린아이란 뜻인데 지금도 경주 아줌마들은 나이 어린 사람들을 부를 때 “아지야, 아지야”하고 부르고 있다.
9. 계림(鷄林)의유래에 대해알아봅시다.
계림은 규모는 작아도 신비로움이 흐르지만 사람들은 입장료를 주고 안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다. 바깥에서 다 보이기도 하지만 그리 넓지 않아그냥 지나친다. 그래도 계림에 오거든 경덕왕 때 충담사가 지은, “흐느끼며바라보며 나타난 달이”로 시작하는 향가 「찬기파랑가」의 향가비를 한번읽어 보는 것도 괜찮다. 이것은 1986년 경주시에서 세웠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대개 끝까지 가지 않고 돌아나와 버리는데 주인공은 마지막에 나타나듯이 끝 왼쪽에는 경주 향교 담벼락이 있고, 대숲이 바람에 일렁인다.
오른쪽에는 김씨 두 번째 왕인 17대 내물왕릉이 보물같이 숨어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첨성대 서남쪽에 있다 했는데, 적당한 크기에 단정하게 누워 있다. 곁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말없이 아름다움을 흘리고 있었다. 그 뒤는 크고 작은 여러 고분들이 평화롭게 누워 있는 동부사적지다. 예쁜 유방같이 생긴 고분 두 기가 내물왕릉 뒤에 연이어 있고, 서쪽에는 거대한 하마 같은 것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도 조명등이 수십 군데에 있어 어둠이 주는 신비로움을 자꾸만 사라지게 한다. 이제 밤은 망쳐 버렸으니 차라리 낮이 낫겠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파란 잔디가 눈을 시원하게 하고, 겨울에 흰 눈이라도 쌓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음껏 뒹군다. 미끄럼 탄다고 왕릉 위에 새까맣게 올라가면 관리 아저씨는 호루라기를 힘차게 불며 고함을 친다 .
10. 관리 아저씨는 왜 호루라기를 불며고함을 쳤을까요?
금궤, 지나치다, 흐느끼다, 향가, 향교, 담벼락, 일렁이다, 고분, 유방,
연잇다, 위용, 조명등, 망치다, 뒹굴다, 미끄럼, 새까맣다, 호루라기, 힘차다
첨성대는 선덕여왕(善德女王, 632~647) 때 만든 것인데 무슨 용도로왜 세웠는지 아직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아직까지 명쾌하게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고 여러 설과 이론(異論)만이 분분하다. 지금까지는 천문 관측대 설이 가장 힘을 얻어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라고 여겨 왔는데 이 동양 최초도 중국에 내주어야 될 형편이다. 2004년 5월에 산서성 (山西省) 타오쓰(陶寺) 유적 에서 4,100여 년(B.C. 2100년) 전에 제작된 천문대가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세계 최고(最古)의 천문대는 B.C. 1680년 무렵에 만들어진, 거대 암석에 둥글게 열주(列柱) 형태로 세워 놓은 영국의 스톤헨지였는데 이것도 자리를 내주어야겠다.
11. 중국 산서성의 타오쓰유적에서 발굴된 천문대에 대해 알아봅시다.
한편 첨성대는 별을 관측하기 위한 상징물, 불교의 수미산을 상징하는건축물, 별을 보고 국가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시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제단, 적의 침입을 알리는 봉화대, 정교한 기하학적 구조의 수학적 상징물,선덕여왕이 신하들을 은밀하게 만나던 장소, 외계인이 남겨 놓은 기념비라는 주장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의견이 분분했다.
한번 첨성대를 자세히 살펴보자. 네모난 기단 밑에는 지진에도 견딜수 있는 진흙과 자갈이 여러 층 다져져 있지만 위의 모양이 그대로 묻혀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꼭 큰 음료수병 같아 보인다. 내 어릴 때 밀짚으로 매미집을 만들면 이 모양이었다. 토기 형태, 고구려의 높은 성곽 형태, 호리병 등이 연상된다. 아래위 네모난 것을 빼고 원주형 돌은 27단이다. 이것을 27대 선덕여왕과 연관 짓고, 중간의 네모난 창문까지 12단은 1년 12달, 위 12단을 포함하면 24절기, 창문틀 3단을 포함하면 30단으로 한달 30일, 맨위 우물 정(井)자를 합친 28단은 별의 기본인 28수(宿), 총 362개 돌은 1년의 음력 날수인 362일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첨성대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는 한 줄도 없고 『삼국유사』에도 아주 짧게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鍊石築瞻星臺]”고만 나와 있다. 첨성대와 관련한 시 몇 수도 전해지는데, 고려 때 경기체가 「관동별곡」, 「죽계별곡」을 지은 안축(安軸, 1282~1348) 은 “전대의 흥망이 세월을 지나, 돌로 세운 첨성대만 푸른 하늘에 솟았네.”했고, 유명한 정몽주(鄭夢周, 1337~1392) 는 이웃 영천이 고향으로 울산에도 1년 귀양 왔고 경주에도들렀던 모양이다.
12. 안축에 대해알아봅시다.
13. 정몽주에 대해 알아봅시다.
용도, 베일, 명쾌하다, 분분하다, 관측대, 길흉화복, 점치다, 기하학적,
은밀하다, 네모나다, 기단, 자갈, 밀짚, 매미집, 호리병, 단, 절기, 창문틀,날수, 경기체가, 전대
월성에 첨성대 우뚝 서 있고
옥피리 소리는 만고의 바람소리 머금었네.
신라가 망하자 문물도 사라졌건만
아 슬프다 산천만은 옛과 같구나.
또 첨성대를 서쪽에서 자세히 보면 북쪽으로 삐딱하게 많이 기울어져있다. 마치 피사의 사탑같이. 1920년대 일본 사람들이 길(신작로)을 낼 때첨성대 옆 북쪽에다 내어 6.25 때 미군 장갑차, 군용 차량이 막 지나가는바람에 북쪽으로 10도 가량 기울었단다. 그 뒤에 첨성대에 밧줄을 매어놓고 군용 짐차를 동원하여 남쪽으로 잡아당겨 5도 정도 바로 섰다. 하지만내가 서쪽에서 바라보면 5도보다는 훨씬 많이 기울어져 있는 듯 보인다.
14. 첨성대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귀양, 우뚝, 옥피리, 만고, 바람소리, 머금다, 문물, 삐딱하다, 피사, 사탑,장갑차, 매다, 짐차, 잡아당기다
명 사: 도깨비불, 경사, 대숲, 솔밭, 세한(歲寒), 댓잎, 대밭, 치맛자락, 족구장, 활쏘기,흙길, 고목나무, 초승달, 숫돌, 쇠붙이, 내막, 맏사위, 석양, 짚신, 짝, 금궤, 향가, 향교, 담벼락, 고분, 유방, 위용, 조명등, 미끄럼, 호루라기, 용도, 베일, 관측대, 길흉화복, 기단, 자갈, 밀짚, 매미집, 호리병, 단, 절기, 창문틀, 날수, 경기체가, 전대, 귀양, 옥피리, 만고, 바람소리, 문물, 피사, 사탑, 장갑차, 짐차
명사·관형사: 기하학적
동 사: 떨어지다, 감퇴되다, 가파르다, 수용하다, 끼다, 적시다, 흔들거리다, 어우러지다, 휘어지다, 거처하다, 지나치다, 흐느끼다, 일렁이다, 연잇다, 망치다, 뒹굴다,점치다, 머금다, 매다, 잡아당기다
형용사: 천박하다, 알록달록하다, 가파르다, 숙연하다, 거나하다, 새까맣다, 힘차다, 명쾌하다, 분분하다, 은밀하다, 네모나다, 삐딱하다
부 사: 어렴풋이, 수북히, 사각사각, 우뚝
1. 다음 단어에 대응되는 해석을 연결해 봅시다.
2. 다음 해석에 해당되는 단어를 [보기]에서 골라 봅시다.
보기: 천박하다, 삐딱하다, 알록달록하다, 숙연하다,
분분하다, 은밀하다, 정겹다, 거나하다
(1) 어지간히 술에 취한 상태에 있다.( )
(2) 여러 가지 밝은 빛깔이 고르지 않게 무늬를 이루다.( )
(3) 의견이나 소문 등이 많아서 갈피를 잡을 수 없다.( )
(4) 고르지 않고 어수선하여 바르지 못하다.( )
(5)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숨기다.( )
(6) 한쪽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지다.( )
(7) 감정 등이 따뜻하고 그립다.( )
(8) 고요하고 엄숙하다.( )
3. [보기]에서 알맞은 것을 골라 빈칸에 써 봅시다.
보기: 묵묵히, 어렴풋이, 수북히, 우뚝,사각사각, 군데군데, 간간이
(1)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도착했을 때도 비는 ( ) 내리고 있었다.
(2) 머리칼에는 흙과 토사물 따위가 ( ) 묻어 지저분했다.
(3) 천년의 반월성은 사람들의 발길을 ( ) 수용하고 있다.
(4) 그 사이 누군가 마당으로 ( ) 눈을 밟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5) 너무 오래된 일이라 ( ) 떠올랐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6) 남산 팔각정이 보이고 여의도 63빌딩이 눈앞에 ( ) 서 있었다.
(7) 가을이 되면 낙엽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다가 나중엔 ( ) 쌓이게 된다.
4. [보기]에서 알맞은 것을 골라 적절한 형식으로 문장을 완성해 봅시다.
보기: 기가 막히다, 내려다 보이다, 앙상하다, 울리다,
새까맣다, 처량하다, 닳다, 시원하다, 흐르다, 밝히다
(1) 산 위에 오르니 마을이 한눈에 _____________.
(2) _____________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3) 종소리가 허공에 ____________________.
(4) 그 광경이 __________________ 아름다웠다.
(5) 먼 길을 떠나는 나그네의 심정이 ________ 그지 없었다.
(6) 신발이 ___________________ 뛰어 다녔다.
(7) 푸른 잔디가 눈을 ________________ 해 주었다.
(8) 해수욕장에 사람들이 _____________ 몰려들었다.
(9) 무슨 영문인지 아직 이유가 ____________ 않고 있다.
(10) 피부색은 검고 윤기가 __________________.
어떤 사실을 반어적인 의문으로 강하게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뜻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이다. 주로 구어체에 쓰이며 친구나 아랫사람에게 말할 때 쓰인다.
▶ 평생에 만사가 뜻과 같지 않으니 무슨 소용 있으랴.
▶ 이십 년 만에 만난 친구인데 얼마나 반가우랴.
▶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 우리 팀이 얼마나 강한데 설마 지랴.
▶ 아무리 돈이 없다 해도 너한테까지 돈을 빌리러 갔으랴.
어떤 동작이나 행동, 상태 등의 선택에서 다른 것에 비해 이것이 더 나음을 제안할 때사용된다.
▶ 이제 밤은 망쳐 버렸으니 차라리 낮이 낫겠다.
▶ 이 시간에는 택시보다 차라리 지하철을 타는 것이 낫겠다.
▶ 이렇게 굴욕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
▶ 거짓말을 하고 전전긍긍하느니 차라리 사실을 말하는 것이 낫겠다.
수량이나 정도, 수준, 일 등이 어떤 정도에 도달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 외계인이 남겨 놓은 기념비라는 주장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의견이 분분하다.
▶ 햇빛이 너무 강해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 그는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을 정도로 나의 말을 믿지 못했다.
▶ 트렁크가 좀 무겁긴 해도 들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야.
▶ 그 말을 들으니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
▶ 그를 보는 순간 그녀의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
말하는 사람이 이미 알거나 들은 사실을 객관화하여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종결 어미이다. 친구나 아랫사람에게 말할 때 쓰인다. 친근하거나 자랑스러운 감정을 나타내기도 한다.
▶ 첨성대가 북쪽으로 10도 가량 기울었단다.
▶ 우리 아버지도 젊었을 때는 정말 멋있었단다.
▶ 세상에는 그래도 좋은 사람이 많단다.
▶ 예전에 여기에 큰 강이 흘렀단다.
▶ 내가 어렸을 때는 집이 가난해서 빈대떡이라도 배불리 먹고 싶었단다.
어떤 동작이나 행동, 사실에 대해 추측함을 나타낸다.
▶ 서쪽에서 바라보면 5도보다는 훨씬 많이 기울어져 있는 듯 보인다.
▶ 요즘 그는 무슨 고민이 있는 듯 보였다.
▶ 친구는 나와 같이 가기 싫어하는 듯 보였다.
▶ 그 아이는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는 듯 보였다.
▶ 그의 걸음걸이를 보니 많이 바쁜 듯 보였다.
▶ 사장님은 오늘 기분이 좋은 듯 보였다.
▶ 노크해도 기적이 없는 걸 보니 어디로 간 듯 보였다.
1. ‘-(으)ㄹ 수 없을 정도이다’를 사용하여 문장을 완성해 봅시다.
(1) 밤하늘의 별들이 (헤아리다) _____________ 많았다.
(2) 내 인내력도 극치에 도달해 더는 (감당하다) _____________.
(3) 괜찮아요. (참다) _____________로 아픈 것은 아니에요.
(4) 그의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해하다) _____________.
(5) 제가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지금 상황을 (판단하다) ________는 아니에요.
(6) 더는 거짓말을 하지 마세요. 그 누구라도 이젠 (믿다) _____________.
2. [보기]에서 알맞은 것을 골라 적절한 형식으로 대화를 완성해 봅시다.
보기: -단다, -(으)랴, 차라리 ……가/이 낫겠다, -(으)ㄴ/는 듯 보이다
(1) 가: 사장님이 안 보이시네요. 혹시 퇴근하셨나요?
나: 사장님이 벌써 (퇴근하다) _____________.
(2) 가: 이게 누구 사진이에요? 미인이시네요.
나: 누구긴 누구야 나지. 나도 젊었을 때는 (예쁘다) _____________.
(3) 가: 정말 그 말을 믿어?
나: 설마 그가 나한테 이런 거짓말을 (하다) _____________.
(4) 가: 정말 고민이 되네.
나: 그렇게 고민을 하느니 (포기하다) _____________.
3. [보기]에서 밑줄 친 부분과 바꾸어 쓸 수 있는 것을 골라 문장을 고쳐 써 봅시다.
보기: 차라리 ……가/이 낫겠다, -(으)ㄴ/는 듯 보이다, -(으)랴,
-(으)ㄹ 수 없을 정도이다, -단다
(1) 어떻게 그 사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일의 진전이 우리가 상상하기 어렵게 빠르게 진행되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 그 때 우리 집 뒷동산에 큰 등나무가 있었지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4) 비행기가 이렇게 연착될 줄 알았으면 고속철을 탈 걸 그랬어요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5) 조용한 것을 보니 방에 아무도 없는 것 같네요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4. [보기]에서 제시된 문법 사항 4개 이상을 사용하여 ‘여행지 관광 체험’을 주제로400자 내외의 글을 써 봅시다.
보기: -거든, -(으)ㄹ 수 없을 정도이다, 차라리 ……가/이 낫겠다,
-(으)랴, 대로라면, -는 바람에, -(으)ㄴ/는 듯 보이다
1. 글쓴이가 반월성을 걸으며 느낀 점은 무엇일까요? 그 느낌을 묘사한 사물과 인물을본문을 참조하여 정리해 봅시다.
2. 다음 내용을 중국어로 번역해 봅시다.
(1) 이제 밤은 망쳐 버렸으니 차라리 낮이 낫겠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파란 잔디가 눈을시원하게 하고, 겨울에 흰 눈이라도 쌓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음껏 뒹군다. 미끄럼 탄다고 왕릉 위에 새까맣게 올라가면 관리 아저씨는 호루라기를 힘차게 불며 고함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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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사가 가파른 반월성 오르는 길은 낙엽이 수북히 쌓여 올라가기가 미끄러웠다. 성위에는 앙상하게 드러난 돌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묵묵히 수용하고 있었고, 하얀 속살을 드러낸 겨울나무가 더욱 나를 숙연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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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첨성대에 대해 본문의 내용을 참조하여 정리해 봅시다.
4. 다음 인물에 대해 본문의 내용을 참조하여 알아봅시다.
1. 여러분은 주변에서 문화 유적을 파괴하는 현상을 본 적이 있습니까? 이에 대해 토론해 봅시다.
2. 정부나 개인적 차원에서 문화 유적 보호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3.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유적지는 어디입니까? 이에 대한 본인의 소감을400자 내외의 글로 써 봅시다.
불국사(佛國寺)는 경상북도 경주시 동쪽 토함산에 위치하고 있다. 일연(一然, 1206~1289)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이 절은 신라 경덕왕 때인 751년에 김대성(金大城)이 세웠다고 한다. 불국사는여러 차례에 걸쳐 고쳐 지으면서 규모가 2,000여 칸으로 커졌으나, 임진왜란 때인 1593년에 왜군에 의하여 건물이 불타 버렸다. 그후 광해군 때인 1612년과, 인조 때인 1630년, 순조 때인 1805년까지 40여 차례의 복원 공사가 계속되면서 안양문, 극락전, 비로전, 관음전, 나한전, 시왕전, 조사전 등이 다시 세워졌다. 조선 말기에 이르면서 복원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970년부터 1973년까지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하였다. 이때, 그때까지 옛 터로만 방치되어 오던 자리에 무설전, 경루, 관음전, 비로전, 화랑 등이 복원되고,대웅전, 극락전, 범영루, 자하문 등이 새롭게 단청되었다. 불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본사의 하나로그 경내는 2009년 12월 21일에 사적 제502호로 지정되었으며 1995년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록되었다.불국사 경내에 또한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그 중 잘 알려진 문화재로는 ‘다보탑(多寶塔)’(국보 20호), ‘삼층석탑(三層石塔)’(국보 21호), ‘연화교(蓮華橋), 칠보교(七寶橋)’(국보 22호), ‘청운교(靑雲橋), 백운교(白雲橋)’(국보 23호), ‘금동비로자나불좌상(金銅毘盧遮那佛坐像)’ (국보 26호), ‘불국사금동아미타여래좌상(金銅阿彌陀如來坐像)’(국보 27호), ‘사리탑(舍利塔)’(국보 61호) 등이 있다. 불국사의 불상과 불당,탑 등은 최고의 기술과 웅장함으로 세계적으로 귀중한 문화적 유산이 되었으며 이는 한국 사람들의 뛰어난 예술적 재주와 지혜를 보여 주고 있기도 한다.
석굴암(石窟庵)은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의하면, 석굴암은 경덕왕 10년인 751년에 대상 김대성이 만들기 시작했고 20여 년을 거쳐 완성되었다고 한다. 석굴암의 원래 이름은 ‘석불사(石佛寺)’였으나, ‘석굴’, ‘조가절’ 등의 이름을 거쳐 일제강점기 이후로 석굴암으로불리게 되었다. 전하는 데 의하면 김대성은 왕명을 받들어 토함산의 정상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불국사와석굴암이라는 김씨 왕족을 위한 2대 사찰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즉 김대성이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불국사를 세우는 한편,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굴암을 세웠다는 것이다. 석굴암의 방위가 김씨왕족의 공동 묘역인 신라의 동해구와 일치하고 있다고 한다. 동해구란, 삼국통일의 영주인 문무왕(文武王)의해중릉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을 말하는데 문무왕은 욕진왜병(欲鎭倭兵)하고자 동해의 호국대룡(護國大龍)이되어 저승에 가서도 국가 수호의 집념을 잃지 않겠다고 한 군왕이었다. 이는 석굴암이 신앙적 측면에서 신라인의 믿음과 호국 정신의 요람으로서 국찰(國刹)과 같은 존재와 중요성을 뚜렷이 부각시켜 주는 예라고 할수 있다. 석굴암은 360여 개의 화강암으로 아치형 구조로 구성되었으며 자연적으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여돌로 된 불상과 내부 구조물이 잘 부식되지 않고 오랜 기간 보존될 수 있도록 과학적으로 구성되었다. 석굴암은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의 면에서 신라 예술의 최고 걸작품으로 꼽히고 있으며, 1995년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경주 남산(慶州 南山)은 경주시의 남쪽에 솟은 산으로 금오산(金鰲山)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북쪽의 금오산과 남쪽의 고위산(高位山)의 두 봉우리 사이를 잇는 산들과 계곡 전체를 통칭해서 남산이라고한다. 금오산의 정상의 높이는 466m이고, 남북의 길이는 약 8㎞, 동서의 너비는 약 4㎞이다. 남산은 신라사령지(四靈地) 가운데 한 곳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곳에서 모임을 갖고 나랏일을 의논하면 반드시 성공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남산에 얽힌 전설과 영험의 사례가 풍부하고 다양하다. 박혁거세(朴赫居世)가 태어난 곳이 남산 기슭의 나정(蘿井)이며, 불교가 공인된 528년(법흥왕 15년) 이후 남산은 부처님이상주하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존숭되었다. 100여 곳의 절터, 80여 구의 석불, 60여 기의 석탑이 산재해 있는 남산은 노천 박물관으로 유명하다. 남산에는 40여 개의 골짜기가 있으며, 신라 태동의 성지 서남산과미륵골, 탑골, 부처골 등의 수많은 돌 속에 묻힌 부처가 있는 동남산으로 구분된다. 남산 서쪽 양산재는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에 있었던 6촌의 시조를 모신 사당이다. 포석정은 신라 천년의 막을 내린 비극이 서린곳이기도 하다. 동남산에는 보리사 석불좌상, 불무사 부처바위, 부처골 감실석불좌상이 있다. 남산에는 미륵골(보리사) 석불좌상, 용장사터 삼층석탑, 국보 칠불암 마애불상군을 비롯한 11개의 보물, 포석정터, 나정과 삼릉을 비롯한 12개의 사적, 삼릉골 마애관음보살상, 입골석불, 약수골 마애입상을 비롯한 9개의 지방 유형문화재, 1개의 중요 민속 자료가 있다. 유적뿐만 아니라 남산은 자연경관도 뛰어나다. 변화무쌍한많은 계곡이 있고 기암괴석들이 만물상을 이루며, 등산객의 발길만큼이나 수많은 등산로가 있다. 사람들은 “남산에 오르지 않고서는 경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곧, 자연의 아름다움에다 신라의 오랜 역사, 신라인의 미의식과 종교 의식이 예술로서 승화된 곳이 바로 남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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